[심화]소설에 적용하는 문학 이론 │ 체호프의 총

소설에 적용하는 문학 이론 │ 체호프의 총


황순원의 <소나기> 기억하시나요? 해당 작품에는 다양한 복선이 나오지만, 굳이 하나만 꼽아 보자면 작품에 서술된 ‘소녀의 입술이 파아랗게 질렸다. 어깨를 자주 떨었다.’라는 문장을 들고 싶습니다. 소녀의 병약한 모습을 미리 서술해줌으로써 추후 소녀가 죽게 됨을 조금 더 매끄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죠. 만약 소녀의 병약한 모습을 미리 언급해주지 않고, 어린아이들이 비를 맞으며 깔깔거리며 재밌게 노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소녀가 죽는 결말이 너무 갑작스럽게 느껴졌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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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선: 소설이나 희곡 등에서,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미리 독자들에게 암시하는 것”


복선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사건을 갑자기 등장시키지 말고 흐름을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만드는 요소를 고려해주시면 됩니다. 사건이 등장할만한 개연성, 인물이 특정 행동을 하는 당위성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장치죠.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복선을 깔 때 생각해야 하는 문학 이론을 간단히 소개해보려 합니다.

 

 

체호프의 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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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들은 무자비하게 버려야 한다. 예를 들어 1장에서 총을 소개했다면 2장이나 3장에서는 반드시 총을 쏴야 하며, 만약 쏘지 않을 것이라면 과감하게 없애버려야 한다.” - 안톤 체호프

 

러시아의 유명 극작가인 안톤 체호프는 위와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여기에서 체호프의 총이라는 이론이 생겨났죠. 이 이론은 ‘발사되지 않을 총이 등장해선 안 된다’ 라고 짧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특정 요소(소재)를 강조해 소개했다면 그것은 반드시 사용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필요 이상으로 분량을 할애해 어떤 요소를 서술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별다른 기능을 하지 않았다면 그건 ‘발사되지 않은 총’과 같습니다. ‘체호프의 총’은 꼭 물리적인 요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물에 대한 설정 혹은 혹은 사회적인 배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해리포터 시리즈』 - J.K 롤링 

해리포터에는 애니마구스라는 명칭이 있습니다. 다양한 동물로 변신할 수 있는 마법사를 뜻하는 말이죠.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이에 대한 설명을 미리 상세하게 언급해줍니다. 추후 해리포터 속 등장인물들은 동물로 변해 위험을 모면하거나 사건을 일으키고, 이것이 없다면 전개가 180도 달라질 정도로 핵심 설정 중 하나죠.

ex. 리타 스키터라는 기자는 딱정벌레로 변신해 사람들 틈에 숨어들어 그들의 은밀한 대화를 엿듣고 기사화해 각종 사건을 야기합니다.

ex. 피터 패티그루는 모든 악행을 들키고 사지에 내몰렸을 때마다 작은 쥐로 변신해 그 자리에서 도망감으로써 위기를 모면합니다. 

 

『어바웃타임』 - 리처드 커티스 

주인공 팀은 21살이 된 날, 아버지로부터 ‘우리 집안의 남자들은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가문의 비밀을 듣게 됩니다. 그 후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이용해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죠. 그러나 여러가지 사건을 겪은 뒤에 그는 깨닫습니다. 현재 자신이 사는 이 시간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요. ‘이날을 위해 시간 여행을 한 것처럼, 나의 특별하고도 평범한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완전하고 즐겁게 매일 지내려고 노력’하며 살겠다고 팀이 결심하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그런데 만약 『해리포터』에서 애니마구스를 그토록 상세하게 설명해놓고 극 중에서 동물로 변하는 마법사가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면, 또는 이로 인한 사건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어바웃타임』에서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던져 놓고, 아무도 시간 여행을 하지 않는다면면 어땠을까요? 아버지가 시간 여행 능력에 대해서 알려줬는데, 주인공인 팀이 바로 그 이후 시간 여행 능력을 일절 언급하지 않고 현실의 이야기만 하다가 끝난다면요?

 

사람들은 특정 요소(인물, 소재, 사건 등)가 부각 될 때 이것이 어떤 기능을 할 것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아무런 효과도 야기하지 않고 그대로 증발해버린다면 독자는 허탈해질 겁니다. 애니마구스나 시간 여행이 아무리 재밌는 설정이어도 그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그런 요소는 극에 불필요한 요소입니다. 


그것이 어떤 요소가 될지는 글에 따라 다를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자신의 글을 읽을 때 체호프의 총을 떠올려주세요. 이것이 이야기와 관련이 있는지, 복선이나 개연성 등에 기여하는 바가 있는지를 생각해보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건(이 인물/설정 등은) 왜 등장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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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습작생이 자신의 글에 다양한 요소와 인물을 등장시킵니다. 잔뜩 무게를 잡으며 등장한 인물을 등장시키기도 하고, 칼이나 총처럼 존재만으로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를 디테일하게 묘사하기도, 혹은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호기심을 조성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글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고 증발해버립니다. 최종 보스인 양 무게를 잡던 사람은 엑스트라였고, 칼이나 총처럼 존재감 있는 요소는 단순 장식품이었고, 시간 여행 능력을 설명해놓고는 극 중에서 이 능력을 한 번도 발휘하지 않는 격이죠.


사용되지 않을 설정을 넣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단순 역량 부족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지적받기 전에는 자신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죠. 그런데 이런 지적을 받은 수강생분이 가장 많이 대답해주신 답은 ‘분량을 채우기 위해서’입니다. 단편 분량을 채우기 위해 눈에 보이는 요소를 길게 설명함으로써 억지로 분량을 늘리는 거죠. 


분량에 대한 걱정으로 글에 상관도 없는 불필요한 요소를 강조하는 것은 뱀에 발을 붙이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여러분의 글을 더욱 지저분하게 만들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분이 분량을 고민하고 계실 것임을 압니다. 하지만 적어도 처음 글을 쓰는 단계에서는, 분량보다는 작품의 질을 먼저 고려해주세요.

 

 

세계관 설정은 세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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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판타지 소설을 쓰고 싶어하지만, 소설 속 세계관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예를 들어 소설 속 인류의 평균 수명이 1000년이 넘는다고 설정해봅시다. 이 설정이 적절하게 기능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500세 내외에 결혼하고 회사의 정년이 60세에서 900년인 게 전부라면요? 그렇다면 굳이 수명이 1000년이라는 설정이 필요할까요? 이 정도의 설정만으로는 평균 수명 80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인생과 아무것도 다르지 않죠. 현재의 우리와 비교해 극 중 인물들이 특출나게 비상하지도 않고, 사회적인 분위기도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세계관 설정 중에서도 특히 자주 등장하는 것이 ‘디스토피아’입니다. 특정 독재자에 의해 소시민들이 억압받거나 강제적인 정책이 존재하는 사회라는 설정이죠. 그런데 이건 말뿐인 설정으로, 해당 설정으로 인해 어떤 정책이 어떻게 작동해 사람들의 관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은 서술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끔찍한 디스토피아라고 적혀는 있는데, 억압적이라는 설정만 있고 그 사회 사람들의 일상이 우리의 일상과 별 다를 바 없는 거죠. 그렇다면 굳이 디스토피아라는 설정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요?


비현실적인 세계관을 설정했을 경우 그 세계관이 영향이 미치는 사회적인 분위기, 풍토, 현상 등 여러가지를 고려해주세요. 해당 설정이 제대로 서술되지 못하면 그 역시 체호프의 총이 장식품으로 등장하는 격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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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등장시켰다면 반드시 쏠 것. 이 간단한 법칙을 잊지 말고 점검하도록 합시다. 쏘지 않을 총이라면 과감히 빼세요. 여러분의 이야기에 사용되지 않은 녹슨 총이 있지는 않은지 한번 되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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