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고 싶었다. 그저 그래야 했고, 그러고 싶었다. | 『 여름의 투신 』권도희 저자님


통유리로 된 창 앞에 휠체어 한 대가 우두커니 세워져 있었다. 7월의 여름 햇볕이 따가울 법도 한데 그것마저 그리웠던 게 아닐까. 양손 모두를 다쳐 움직일 수 없었기에 바퀴조차 끌 수 없었고, 그 햇살을 오래 맞고 있을 만큼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가뜩이나 왜소한 체격이 큰 환자복에 파묻혀 연민마저 들게 하던 나는 이내 멍하니 창밖을 쳐다보던 걸 관뒀다. 아마도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황급히 자리를 치웠을 게 뻔했다.


내 인생의 첫 문장은 차디찬 맨바닥에서 핏자국과 함께 시작되었다. 창문이 활짝 열렸음에도 고집스레 제 역할을 다하는 에어컨이 있던 한 칸짜리 원룸의 주인은 이미 허술한 투신을 마친 뒤였다. 유감스럽게도 그 주인은 내가 맞았다. 술을 한 병쯤 비웠고, 난간에 걸터앉아 울며 119를 찾았다. 와 달라고, 제발 와서 바닥에 널브러진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가 달라고. 그 정도 높이에서는 죽지 않을 거라는 걸 약삭빠르게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찬 바닥에 오래 누워 있어야 할 내 몸뚱이가 불쌍했다. 그런 여름이었다. 푹푹 찌던 날씨와는 다르게 뒤틀린 뼈마디를 파고드는 바닥의 냉기는 겨울의 그 무엇과도 같았다. 찢어진 이마를 타고 흐른 피는 바닥을 흥건히 적신 걸로도 모자라 두피를 타고 넘어갔다. 그건 술 한 병의 용기가 아니었다. 전화기 너머로 기다려 달라는 119 대원의 목소리가 다급해질수록 나는 되려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전화를 건 사람은 나인데도 떨어지지 못하고 구조될까 봐 두려웠다. 나는 기필코 그날 떨어져야 했다. 떨어지고 싶었다. 그저 그래야 했고, 그러고 싶었다.


그 뒤로는 아비규환이었다. 의식이 없는 사이 나는 자살 시도 환자로 규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이 아닌 자해였다고 뻔뻔하게도 우겨대었다. 누가 3층에서 자살 시도를 하겠냐며 농담처럼 웃었다. 오른쪽이 죄다 부러지고, 왼쪽은 타박상에 이마 한가운데를 이마 길이만큼 꿰맨 응급실 내 최고 중상의 환자가 웃어 대고 있었다. 변죽도 좋게 간호사들에게 말까지 걸어가며 속으로는 웃을 때마다 들썩거리는 골반 골절의 고통을 감내했다. 내 사고 소식을 접한 지인들에게도 농담이라는 좋은 무기로 내 불행을 웃어넘겼다. 조명이 꺼지고 막이 내리면 적막한 어둠만이 감도는 서커스장 같은 삶. 그 안에서 쓴 웃는 가면은 절대 들키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오래전부터 깨달았던 것 같다. 내가 웃으면, 내가 심각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갈기갈기 찢어진 속의 통증이 동강 난 뼈마디의 욱신거림보다 더 심하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걸. 그리고 그 웃음과 농담이 너무나 철저하고, 너무나 자주 흘려 대서 나 자신까지 속이고 있었다는 건 조금 늦게 깨달은 사실이다.


떠올려 보면 어린 시절 타던 그네는 아무리 높게 올라가도 다치지 않았다. 앉은 채가 아닌 선 채로 타든, 줄을 잔뜩 꼬아서 타든 장난기 많은 꼬맹이들을 태우던 그네는 그들에게 관대했다. 하지만 그 꼬맹이는 이제 친구들과 해가 지면 헤어지는 사이가 아닌 해가 져서야 그네에 앉아 우는 어른으로 자랐다. 한숨과 같은 담배 연기를 뱉어내며 씁쓸히 현실을 들이쉬는 마치 세상의 향취에 지쳐 버린 사람이 되었다. 그 담배를 지져 끄고 나면 이제는 공중그네를 타러 가야 한다. 손을 잡아 줄 사람도, 안전장치도 없이 허공을 걸어야 한다. 세상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좁은 도시에서 하필 공부를 잘했다. 그리고 그 좁은 도시에 소문이 파다할 만큼 다수와 다른 길을 걸었다. 무너지기 전, 나는 가족 모두의 자랑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남들의 기대를 떠안고, 그 기대 속에 섞인 부담을 감당하고, 시기와 질투를 걸러 내야만 했다. 주목받는 삶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내 몸은 점점 떠밀려 벼랑 끝보다 더 무서운 공중그네 위에 섰다. 죽는 것보다 가끔은 사는 게 더 무섭다는 걸 그때 알았다. 


조명이 꺼질 때도 됐건만, 여전히 온 세상의 구경거리인 내 몸짓은 오래전에 지쳐 버렸기에 볼품없이 버둥거리기만 한다. 서커스를 완성하기 위해 잡힌 물집을 보고 아름답지 않다며 세상은 손가락질한다. 어쩌다 실수 없이 모든 동작들을 해냈을 때 받아 내는 박수와 찬사는 내 목을 더 조여 올 뿐이다. 위에서 내려다본 세상 속에는 내가 삐끗하기를 소원하는 사람들 역시 참으로도 많다. 내 추락을 바라는 사람이 그토록 이나 많다. 그런 공중그네 같은 삶을 살았다. 차라리 추락하고 싶었다.


난간에서 손을 놓는 순간부터 의식이 없었다. 온전히 기억이 나는 순간은 새벽 네 시쯤, 지방에서 서울까지 먼 길을 달려온 엄마가 내 얼굴을 쓰다듬던 때부터다. 그때 엄마는 울고 있었던가, 아니면 간신히 울음을 참고 있었던가.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엄마는 자살 시도로 뛰어내렸다는 말밖에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오는 길 내내 제발 살아만 있어라, 제발 숨만 붙어 있어라 하는 마음으로 4시간을 달려왔다고 했다. 살아 있는 걸 확인한 후에는 제발 장애만 남지 않게 해 달라고 그렇게 모든 신께 빌었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연고지 근처 대학 병원으로 옮겨 가게 되었다.


응급실은 꼭 지옥 같았다. 골반이 쪼개지고, 손목과 팔꿈치가 으스러진 전신 타박상의 환자는 엑스레이 한 번 찍기도 힘이 들었다. 테이블에 나를 들어 올려놓을 때마다 죽지 못한 걸 후회할 정도였다. 쪼개진 골반은 내 멍청한 행동을 비웃듯 겪어 보지 못한 고통을 주었다. 그러게 왜 그랬어. 죽지도 못할 거 뭐 하러 그랬어. 네가 그랬잖아. 네가 한 짓이잖아. 뛰어내린 건 너면서 이런 거에 아파할 양심은 있어? 마음속에서 스스로를 향한 질책이 웅웅거렸다. 그래서 비명 한 번 지를 수가 없었다. 아프다는 엄살 한 번을 부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를 공중그네에 태운 건 너희잖아. 웅얼거리는 내 변명은 부끄럽기 짝이 없어서 누군가의 귀에 들어가기도 전에 휘발되고 말았다. 내 손을 붙들고 이렇게 힘들다는 걸 여태 몰라줘서 미안하다며 우는 이모와 차마 나를 볼 자신조차 없어서 들어오지도 못하는 이모부를 앞에 놓고는 더더욱 그랬다. 나는 죄인일 수밖에 없다. 응급실의 하얀 천장을 보고 차라리 실성한 사람처럼 웃어 재끼고 싶었다. 악몽이었다. 그들이 바라던 대로 추락해 줬건만 이곳은 바닥이 아니었나 보다. 더, 더 추락할 곳이 아직 남았나 보다.



-중략-



도서 더 읽어보기 (yes24)



4350413520870bc98122c17006fe28c3_1636677916_5118.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