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에 대해서도 잘 모르면서 다른 사람을 궁금해했다. | 『 여름의 의미 』신건우 저자님



사람마다 대상에게 부여하는 의미가 천차만별인 것처럼, 여름 또한 사람마다 모두 제각기 다른 의미를 갖는다. 여름은 누군가에겐 선명하고 청량한 계절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겐 덥고 습한 계절일 뿐이다. 하지만 어떤 것의 의미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우리는 살면서 예상치 못하게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러한 경험들에 의해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가치관, 감정, 선호가 뒤바뀌곤 한다. 아무것도 피하지 못한 채, 변치 않을 거로 생각했던 것들은 생각보다 쉬이 변해버린다.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남지만, 의미는 변한다. 변화로 인한 균열은 불안함을 낳는다.



내리쬐는 햇볕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아스팔트 위를 걷다가, 볕을 피해 갓길의 나무 그늘 쪽으로 바싹 붙는다. 나무와 가까워지니 매미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매미는 사실 이 오 십(2x5=10)하며 운다는 친구 선우의 말을 떠올린다. 하지만 난 매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끝내 알아듣지 못한다. 매미 소리와 자동차 경적 그리고 숨통을 조이는 더위로 가득 찬 여름을 견딘다. 앞으로 남아있는 수많은 여름도 매번 잘 넘길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사실 그러지 못한다 해도 어쩔 수 없고, 앞으로의 여름이 몇 번일지도 모르는 거고. 자꾸 이렇게 포기하는 법을 배운다. 근데 포기하는 것과 마음을 내려놓는 것은 뭐가 다를까. 이러지 않기로 했는데 다시 쓸데없는 고민에 빠진다.



언젠가 나와 함께 이렇게 하등 쓸모없고 답도 없는 두루뭉술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포기하는 것과 마음을 내려놓는 것의 차이 같은 얘기들. 그런 얘기들 속엔 쓸모와 답은 없더라도 의미는 있었다. 우리는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것을 찾는 걸 즐겼으며, 의미 없는 것들에까지 의미를 붙여줌으로써 살아갔다. 다른 사람들은 종종 우리에게 꿈이 아닌 현실을 살라고 조언하곤 했다. 꿈과 의미. 관념의 것들은 구별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말이었지만 무시하지 못했다. 그래, 나도 내가 그러길 바랐다. 현실을 살기. 하지만 바꾸고 싶어도 바꾸는 게 쉽지 않은 것들이 지금보다 어렸을 땐 더 많이 있었다.



내가 더위를 원래 이렇게 많이 탔나. 아무래도 마스크 때문인 건가. 나온 지 몇 분 만에 옷은 이미 땀에 푹 젖는다. 이마에 고였던 땀이 뚝뚝 떨어진다. 그 땀방울들이 목을 타고 흘러 옷깃에 고이는 게 느껴진다. 거봐, 땀도 전보다 많이 나는 것 같아. 아무래도 건강이 잘못된 건가. 올여름은 무언가 다르다. 더 더워. 더워서 견디지 못할 것 같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견딜 만하다. 폭염에 짜증이 솟구쳐 머릿속으론 온갖 욕을 다 뱉어내고 있는데도 괜찮다. 설렘이나 불안 때문에 심장이 너무 빨리 뛰거나 숨을 너무 급하게 쉬지도 않는다. 그건 한여름의 뙤약볕을 견디는 것보다 힘든 일이었으니. 한국은 정말 살 곳이 못 된다고 고개를 저으면서도 떠나고 싶단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살 만해. 중구난방 하는 생각과 함께 빠르게 걷는다.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주는 동네 카페에 도착한다. 문을 열자마자 시원하다 못해 시린 냉기를 맞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두곤 에어컨과 가까운 자리에 앉는다. 땀으로 젖었던 옷과 목덜미가 순식간에 마른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를 다룬 짧은 뉴스를 떠올린다. 이상기후로 멸망하는 지구를 상상한다. 



높은 파도에 휩쓸리지도, 너무 깊게 잠수하지도 않았다. 그저 고요한 바다에 가볍게 몸을 띄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드디어 그런 사람이 된 걸까? 사람들이 나빠서 멸망한 지구를 떠올리며 아무 감정을 느끼지 않는 마음은 무덤덤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다시 대답할 사람도, 그럴 필요도 없는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정말 무덤덤한 사람이 됐는가 해서 몇 년 전을 떠올린다. 그해 여름과 여름을 함께한 사람들을 그려본다. 기껏해야 4~5년 전인데 너무 까마득하다. 꽤 가까웠던 과거는 어느새 너무 멀리 있어서 흐릿하게만 보인다. 그 흐릿함 속에서 나는 다시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스무 살의 내가 가장 좋아하던 여름이 가장 불안한 계절이 되기까지의 경험들. 그것들은 나를 설레게 했고 자유롭게 했으며, 동시에 나를 무너뜨리고 불안하게 만들기도 했다. 글을 읽는 당신에게 여름은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다. 그리고선 수박을 좋아하는지, 그렇지 않다면 복숭아는 좋아하는지, 딱딱한 복숭아가 좋은지, 물렁한 복숭아가 좋은지. 그런 조그맣지만 강한 취향들을 묻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내가 당신의 대답을 듣기까진 알 수 없는 만큼의 시간이 걸릴 것을 깨닫고, 대신 나의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이기적이게. 스물다섯 - 이십 대 중간에서의 기록. 그리울 줄 모르고 사진으로 남겨둘 생각조차 못 했던 마음과 너무 무기력한 나머지 힘을 주어 연필로 눌러쓰지 못했던 마음을 언젠간 다시 이어 쓸 수 있도록. 그러니까 이 글은 몇 번의 겨울을 지나 달라진 여름의 의미, 그리고 나의 감정들의 기록이다. 산미가 조금 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노트북을 켠다. 지난여름을 긁어모으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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