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면서 꼭 알아야할 묘사 방법

글쓰면서 꼭 알아야할 묘사 방법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더 낫다는 말이죠. 소설 속 묘사도 이와 비슷합니다. 글을 쓰게 되면 여러분들은 필연적으로 자신(혹은 캐릭터)의 감정을 말하게 될 겁니다. 감정을 그냥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도록 만들어야 하는 거죠. 이걸 바로 ‘묘사’라고 합니다. 글을 시각적인 형태로 구현해보세요. 인물의 감정이 눈앞에 그려지지 않으면, 독자는 장면을 흘려보고 넘어가 버릴 수도 있습니다. 한 번 예시를 볼까요?



  장면이 눈앞에 그려지도록 세밀하게 적어보기

  그녀는 이 상황이 부끄러웠다. 그녀가 밖으로 달아났다.


  --> 그녀는 연신 몸을 움찔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그녀의 어깨는 딱딱하게 굳어 위로 솟아 있었고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할 때마다 광활한 광장에 발가벗고 서 있는 듯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방에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누군가 다리를 도끼로 내려친 듯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가령 주인공이 ‘부끄럽다’는 감정을 느끼는 장면이라고 가정해보겠습니다. 독자들이 이 장면을 이해해야 앞으로 전개될 사건들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그런데 인물의 심리가 단순히 ‘부끄러웠다’라고만 적혀 있다면 어떨까요? 독자는 그녀가 어느 정도의 부끄러움을 느끼는지, 그래서 그녀가 지금 어쩌고 싶은지 제대로 짐작할 수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부끄럽다’는 감정을 묘사해볼까요? 간단한 묘사이지만 그녀의 심정이 훨씬 눈에 그려지죠. 그녀가 부끄러움으로 인해 현재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어깨는 딱딱하게 굳어 위로 솟아 있었고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얼마나 부끄러움을 느끼는지 (광활한 광장에 발가벗고 서 있는 듯한 부끄러움), 당장이라도 달아나고 싶지만 왜 그러지 못하는지 (누군가 다리를 도끼로 내려친 듯이) 세밀하게 서술되어 있죠. 


   강렬한 시각적 요소는 독자의 뇌리에 깊게 박힐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단순하게 장면이 서술되면 스쳐 지나간 짧은 장면과 다를 바 없을 것이고, 독자는 이내 그 장면을 잊어버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물이 처해 있는 상황이 독자의 눈앞에 그려지고 그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지나갈 수 있다면, 작가가 의도한 바를 온전히 살릴 수 있죠.



 주변의 사물 혹은 날씨에 감정을 빗대어 보기


  그의 제안이 탐탁지 않았다.


  --> 평소엔 달콤하게만 느껴졌던 커피 향이 유달리 고약하게 느껴졌다. 그의 제안은 언뜻 매력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우울했다.


  --> 하늘엔 짙은 먹구름이 잔뜩 껴있었다. 지금 내 마음처럼 금방이라도 장대비가 쏟아질 것 같이 흐린 날이었다. 

   장면을 세밀하게 서술하는 것 외에도 주변의 사물 혹은 날씨에 자신의 감정을 빗대어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주인공이 누군가에게 어떤 제안을 받았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작가가 전달하고 싶은 말은 ‘제안이 탐탁지 않았다’라는 것 하나입니다. 하지만 ‘평소라면 달콤하게만 느껴졌을 커피 향’이 그의 제안을 듣는 순간 고약하게 느껴졌다는 말로 그의 감정을 에둘러 표현했습니다. ‘우울하다’라는 감정 역시 단순히 우울했다, 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흐린 하늘을 묘사하면서 그게 마치 내 마음처럼 느껴졌다고 묘사할 수도 있겠죠. 물론 자신의 감정을 꼭 길게 풀어써 쓸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예시도 볼까요? 



 행동으로 인물의 성격을 묘사하기

  오늘 엄마는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을지도 모른다. 양로원에서 보낸 한 통의 전보를 받았다. "어머니 별세. 내일 장례. 삼가 아룀."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마도 어제였을 것이다. - 알베르 카뮈, 『이방인』 

(간혹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번역하기도 하지만 원문의 뉘앙스와 가장 가까운 번역은 ‘죽었다’라고 합니다.)

   인상적인 첫 문장 예시로도 쓰였던 알베르 카뮈의 장편소설 『이방인』의 도입부입니다. (인상적인 도입부 쓰기 글 바로가기) 전 세계의 많은 문학인이 인상적인 도입부로 꼽는 소설이기도 하죠. 작가는 이 짧은 도입부에서 인물의 성격을 집약적으로 묘사했습니다. 


   만약 엄마가 세상을 떠난다면 어떤 감정이 들까요? 대부분은 슬픔을, 누군가는 기쁨을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일반적으로는 인물이 얼마나 슬프고 기쁜지, 그로 인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감정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도록 그리겠죠. 그런데 작가 알베르 카뮈는 조금 다른 노선을 취했습니다. 감정을 배제하고 최대한 담담하게 묘사했죠. 소설 『이방인』 속 주인공이 타인의 감정에 잘 동화되지 못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이 직접 자신의 입으로 ‘나는 감정에 무감각한 인물이다’라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너무 직접적으로 느껴져 멋이 없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고, 그가 왜 감정에 무감각한지 장면이 그려지지 않아 마음으로 느끼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방인』의 주인공은 감정을 풍부한 표현으로 풀어 말하지 않습니다. 엄마의 부고 소식을 듣고도 아무런 감정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모습을 통해 역설적으로 그의 심리를 묘사했죠. 그의 내면 심리가 자세히 서술되지 않아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거나, 엄마가 어제 죽었는지 오늘 죽었는지 별 신경 쓰지 않는 모습에서 독자는 그가 감정에 무감각한 사람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 바로 언어입니다.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그에 담긴 뉘앙스가 판이해지죠. 위 소설의 ‘죽었다’는 짧은 술어에도 그의 심리가 드러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부모의 죽음에 ‘죽었다’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죽음을 가벼이 다루지 않기 위해, 혹은 고인을 존중하기 위해 ‘돌아가시다’, ‘타계하다’, 혹은 ‘별세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죠. 그런데  『이방인』의 주인공은 엄마의 죽음에 아무런 존중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듯 ‘죽었다’는 표현을 사용했죠. 5줄 내외의 짧은 문장 안에 많은 요소가 함축적으로 들어갔죠? 


   여러분은 왜 책을 읽고 글을 쓰고자 하나요? 분명 여러분은 타인의 글을 읽고 감동하여본 적이 있을 겁니다. 소설이나 에세이 속 주인공이 겪는 사건이 마치 제 일처럼 느껴져 웃음이 터지거나, 슬픔에 잠겨본 적도, 혹은 그가 모든 시련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며 자신이 카타르시스를 느껴본 적도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어떻게 직접 겪어보지도 않은 사건들에 울고 웃을 수 있던 걸까요? 그에 작용하는 많은 요소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묘사’입니다. 독자가 인물과 동화할 수 있도록 서술했기 때문에 감정을 이입해가며 글을 읽을 수 있는 거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물의 모든 행위나 심성을 묘사하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한 문장을 구체적으로 쓰는 것은 마치 온점대신 느낌표를 쓰는 것과 같습니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강조하는 효과가 있죠. 그런데 만약 모든 문장의 끝에 온점 대신 느낌표가 붙는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더는 강조 효과가 나지 않고 지나치게 글이 무거워지겠죠. 문장도 이와 같습니다. 글 내에서 비중이 없는 문장까지 묘사하려고 하면 스토리의 진전도 느려지고 독자의 피로도가 높아질 뿐입니다.


   그래서 글ego 책 쓰기 프로젝트에서는 감정을 혹은 풍경을 묘사하는 법에 대해 온전히 하루를 할애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묘사해야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지, 내 감정이 곡해 없이 전달되는지 서로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추후 담당 작가와의 일대일 피드백 시간에서는, 묘사로 처리할 부분이 적절하게 선별되었는지 글의 밸런스를 맞추는 트레이닝도 하고 있죠.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글은 향기 없는 꽃과 다르지 않습니다. 흥미로운 스토리와 화려한 미사여구로 언뜻 재미있어 보이지만, 소설 속에서 울고 웃는 인물의 감정이 내면 깊숙이 와 닿지 않아 이내 잊히고 말죠. 여러분은 자신의 글이 독자들에게 어떤 향기로 기억되길 바라나요? 이제부터 그를 생각하며 글을 적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