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의 기록들 ;

출판 프로젝트에서 출간한 책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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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어요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

불현듯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때가 있다. 한동안 앓아누운 후 몸을 일으켰을 때나 숨이 차오를 때까지 운동장을 돌 때 그러한데, 그럴 때마다 한동안 닫혀 있던 온몸의 세포들이 한꺼번에 열리는 듯한 기이한 느낌을 받는다. 많은 이들이 삶이 충만하다 여겨질 때보다 고통을 겪을 때 펜을 잡고 글을 쓰는 이유는 무뎌진 감각들이 정신과 육체의 아픔 속에서 생생히 되살아나기 때문은 아닐까.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글 역시 그러하다. 아픔을 그대로 묵인하는것이 아니라 끈질기게 바라보고, 우울을 이겨내며 적어낸 글. 순간의감각을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적어낸 글들이다. 화자들의 글을 읽는 내내 아프면서도 행복했다. 아픔 속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살아내기 위해 이들은 글을 택한 것 같다. 이 책을 읽는독자들에게도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길 바란다

 

– 라이팅리더 소설가 성해나

시간을 엮으니, 우리

처염상정(處染常淨). 진흙탕에서 피어나지만 흙탕물이 묻지 않는 연꽃이라는 뜻입니다. 불교에서 연꽃은 깨달음의 세계를 향해 피는 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연꽃이 피어나는 진흙탕처럼 어지럽습니다. 불필요한 자극도 많습니다. 하지만 질척한 진흙탕을 뚫고 피어난 연꽃처럼 우리를 꼿꼿이 드러낸다면,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주변에 퍼트릴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번 책 출간을 통하여 연꽃을 피운 우리가 늘 고유한 색깔과 향기를 지닌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탁한 물에서도 향기를 뿜어내는 연꽃과 같이, 이 책에 담긴 여러 향기가 여러분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길 바라며.

 

– 공동저자  달래

사람보고서

늘 그랬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시간은 항상 제멋대로 흘러갔다. 반복되는 줄도 모르고 살았던 지겨운 삶 속에서 이 프로젝트는 나의 유일한 재미이고, 보람이었다. 글을 쓰며 떠오르는 누군가를 미워하고 또 이해하고 사랑했다. 차가운 겨울 밤이 외로울 사람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글 하나에 수 많은 사람을 진정으로 알았다. 어딘가 존재할지 모르는 상상속 그들과 마음을 나눴고, 가끔은 같이 울었다.

우리는 모두가 처음이었다. 처음 만난 열명이 모여, 처음 가는 장소에서 설렘을 공유하고 서로의 이름 밖에 모른 채로 솔직했다. 마음 하나로 이어진 우리는 어른이 아닌 꿈을 꾸는 아이가 되어 각자의 순간과 상상을 써 내려갔다. 미숙한 우리가 만나 한권의 완성을 만들었다. 열명의 이름이 들어간 이 한권의 작은 책에는 어떤 이의 솔직해질용기가, 또 어떤 이의 첫 꿈이 담겨있다..

– 공동저자  이시원

내면

(중략) 누군가에게 매일같이 묻고 있던 안부를 자신에게도 물어본 적 있나요? 글쓰기는 나와의 대화에서 시작합니다. 내가 괜찮은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잘 지내고 있는지를 궁금하게 됩니다.

가장 자주 해야 했지만, 가장 낯선 질문을 용기 내 쓴 사람들이 있습니다. 6주간의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어쩌면 고되고 불편할지도 모를 이야기를 꺼내놓은 열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올해의 겨울이 예년에 비해 따뜻했다고 해서 모두에게 견딜만한 겨울이 아니었듯이 나와의 대화가 모두에게 견딜만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려운 이야기를 시작한 모두에게 따뜻한 격려와 응원을 보냅니다. 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나의 안부를 묻는 글쓰기가 쭉 이어지기를 바라요.

– 라이팅리더 소설가 최아현

197-25 501호

(중략) 우린 ‘책상’이라는 소재만 놓고 글을 쓰더라도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입을 ‘오오’ 벌릴 만큼이나 다른 글들을 썼다. 하지만 모두가 자신의 글을 써 내려가며 느낀 점은 하나로 통하는 것인데 ‘글을 쓰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는 것이다. 장르를 불문하고 우리는 모두 글을 쓰면서 나의 삶, 우리의 삶, 나아가 인간의 삶을 제대로 보기 위해 사람의 몸 안 어딘가에 있을 마음에다 빛이 통하는 창을 뚫어냈다. 창을 내고 나서 우리는 ‘나’에 대해 관찰하기 시작했다. ‘나’의 오랜 기억들과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후회와 깨달음들… 이 소중한 것들을 세심히 성찰하고 시간의 흐름에 흩어지지 않게 하려 우린 펜을 집어 들었다. 그래서인지 각자 다른 이야기임에도 통하는 바가 있고 이에 대해 독자들도 통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 공동저자  유기문

각자의 호흡 속에서

사람은 부단히 ‘나’로 존재하기 위해 호흡을 한다. 하지만 호흡이 조화를 이룬다는 뜻으로 쓰일 때 우리는 다른 이와의 관계를 되짚어 보기 마련이다. 아주 잠깐밖에 호흡을 멈추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타인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 그렇게 누군가를 들숨으로 받아들이고, 날숨으로 내보내고 하면서 우리는 존재하는 것이리라.

수록된 아홉 편의 이야기는 이러한 고민으로 채워져 있다. 하나하나 숨결은 다르지만 결국은 나와 당신, 나와 그들, 또는 나와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높낮이의 변화 없이 긴 호흡으로 이루어진 문장도, 가쁜 숨을 몰아쉬게 만드는 문장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진솔한 호흡은 분명 당신에게 가닿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 호흡을 가다듬을 때가 되었다. 최대한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길게 내쉬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홉 편의 이야기가 지금 숨죽여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라이팅리더 소설가 전태호

나비 리본

(중략)결국 상상력은 경험적 데이터의 양에 비례할 뿐이지 않을까. 이런 오만한 결론에 도달할 즈음, 현관문이 열렸다. 수줍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고개만 어정쩡히 꾸벅이며 들어오는 이들은 이전에 봤던 사람들을 마주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익숙하게 느껴졌다. 외모는 달랐지만, 스쳐갔던 사람들이 풍겼던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 누구의 첫인상이든 무덤덤하게 보아 넘길까 싶은 소심한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들과 찬찬히 눈빛을 교환하고,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잠시 빠졌던 권태로운 걱정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상상은 외부로만 뻗는 것이 아니었다. 내부로 뻗어 뭉쳐 옹골진 응어리를 형성하고, 무거워지면 추락하고, 그 과정에서 내면에 깊은 골을 팬다. 나는 다들 기억 속에 내제된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온갖 철학서와 이론서를 통해 지식을 쌓아왔다는 걸 느꼈다. 표현이 정돈되진 않았지만, 그 깊이의 갈래는 나와 온전히 다른 곳을 향했다. (중략)

 

-라이팅리더 소설가 정성우

밤에 적다

(중략)실수이거나 습관적으로 흘러나온 날카로운 표현이 타인의 마음을 할퀼 수 있다는 걸 아는 이들은 신중하다. 그리고 본인보다 타인을 먼저 이해하려는 시도는 사랑으로 향한다. 사랑으로 쓴 글은 포근하다. 이 책의 저자들은 본인 보다 타인에 대한 이해를 먼저 썼다. 그러한 과정에서 본인에 대한 이해를 어느정도 마무리했을 지도 모르지만, 본래 농밀한 이타성을 가슴 속에 지니고 태어났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여튼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에는 배려가 깔려 있고, 방향성은 사랑을 겨누기에 여덟 작품을 읽는 내내 솜이불에 감싸이는 듯한 포근한 기분이 들었다. 누구나 스며들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 라이팅리더 소설가 정성우

재조명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끊임없이 받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중요한 것들이 참 많습니다. 직업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학교를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그런 것들을 빼면 당신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요. 그럼 질문을 조금 바꿔보겠습니다. 당신은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나요? (중략)

-라이팅리더 소설가 최아현

지나가는 중입니다

(중략)모두의 모든 나날을 알아챌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올해에 이 책이 남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들 회사에 다니고, 학교에 다니면서도 글을 쓰고 싶어 모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삐 일상을 보내는 동안에도 지나가는 밤을 붙잡으며 글을 썼습니다. 각자의 마음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담은 밤을 지나왔습니다. 아마도 여전히 지나가는 중이겠지요. 올해 가을, 찰나의 마음들이 모여 책 한 권이 되었습니다

아직 지나지 못한 사람도, 지금 지나가는 사람도, 이미 지나가 버린 누군가도 이 책을 만나고 어떤 순간들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책을 다 넘기고 덮고 나면, 읽는 이에게도 글을 쓰고 싶은 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펜이어도 좋고, 노트북이어도 좋습니다. 지나가는 순간을 기록해보세요.

– 라이팅리더 소설가 최아현

나 우리 그때 거기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함부로 대할 수 없단 걸. 활동 중에 책상을 백지에 자유롭게 표현하는 시간이 있었다. 오래 고민하느라 몇 줄 쓰지 못하는 이도 있었고, 생각이 넘쳐서 쭉쭉 써내려 가는 이도 있었다. 마침내 여섯 명이 돌아가면서 자신이 표현한 책상을 읽었다. 놀라운 것은 동일한 상관물에 대한 설명이더라도 겹치는 부분이 별로 없었다는 점이다.

책상의 형태, 책상에 관련된 추억, 책상의 용도, 책상에 남은 흔적, 그리고 의인화된 책상. 책상은 말없이 나를 받아준다는 마지막 말이 꽤 오래 여운을 남겼다. 일시적으로 강의실 벽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왜 명작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두근거림을 느낀 건지. 입 없는 책상에 입을 그렸고, 말이 없음에 배려를 느낀 이해의 시선이 문학이란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 아닐까. 깨달음을 준 여섯 명에게 찬사를 보낸다.

-라이팅리더 소설가 정성우

여름의 끝자락

이쪽에서 꽃망울이 터지면 저쪽에서도 꽃망울은 터진다. 여름은 그러한 계절. 터져 나오는 것들은 반드시 어우러질 수밖에 없고, 어우러지다 보면 나와 세계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당신에게 닿을 수 있기를 여름밤 내내 두 손 모아 빌다가, 작은 불 하나만 밝혀 둔채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터뜨리기를 망설이지 않았고 터져 나오는 것들은 애써 억누르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당신이라는 세계 앞에 다다랐다.

낱말을 한아름 안고서, 계절의 고민을 품고서, 몇 번을 머뭇대다 이렇게 속삭였다. 수확의 계절입니다. 이제 나는 당신이 페이지를 넘겨주었으면 하고 조용히 기다린다.

 

-라이팅리더 소설가 전태호

잇고 , 있다

자아는 하나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긴 시간에 걸쳐 흩어져 있거나, 짧은 시간에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대부분의 자아는 잠깐 빛났다가 곧 시간 속에 가라앉고 만다.

하지만 한때 즐겨 듣던 노래가 우연히 귀에 들어올 때, 오래된 솜이불 냄새가 문득 코에 닿았을 때, 추억의 군것질거리가 혀끝에서 녹아 없어질 때, 잊고 있던 자아는 시간을 거슬러 불쑥 찾아오기도 한다.

기나긴 시간은 이토록 내 삶과 함께 이어져 왔음을, 이 모든 자아들은 내 안 어딘가에 살아 있었음을, 우리는 어렴풋이나마 깨닫고 각자의 글을 써 내려갔다.

다시 가라앉을지 모르는 자아들을 붙잡기 위해, 깊고 어두운 시간 속으로 기꺼이 손을 집어넣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이처럼 작지만 아름다운 소명에서 시작되었다.

 

-라이팅리더 소설가 전태호

호프(hope) 한 잔 어때요?

본인이 본인에, 본인이 타인에, 본인이 허구에 이입하려는 노력은 가치 있다. 본인을 위한, 공동체를 위한, 이상을 위한 세계로 나아가려는 노력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개인이 모여 공동체를 형성하고, 공동체가 머리를 맞대 가까운 이상을 실현한다. 이입은 방향을 이해로 겨눈다. 이해는 모든 것을 지적으로 포용한다. 순도 100%의 이해는 신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불가능하기에 노력한다. 노력은 타인으로 하여금 감동을 자아낸다. 개인이 좁히지 못한 이입과 이해의 간극은 감동이 채운다. 본인의 노력과 타인의 노력이 맞물리는 지점에서 공감이 형성된다. 이입하려는 노력 없는 글은 공감을 얻지 못한다. 글에서 노력은 배려다. 배려는 가치 있다. (중략)

 

-라이팅리더 소설가 정성우

나를 걷던 시간

입은 과묵하고 눈빛은 예리했다. 저자들의 첫인상이었다. 그들은 소통 과정에서 속내를 조심스럽게 내비쳤고, 학습과정에선 묵묵히 귀담아들었다. 하고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정제돼 있었다. 입밖으로 글감을 털어놓기 보단 가슴 속에 고이 담아 여과하기를 바라는 기색이었다. 저자들의 초고를 읽기 전에 몇 가지 걱정이 앞서곤 했다. 휘갈겨 쓴 글을 내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을 읽고 내가 어떤 조언을 첨가해야 저자가 좋은 방향으로 글을 이끌어갈 수 있을까. 혹 내가 뱉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저자에게 상처가 되거나, 저자의 개성을 침해하진 않을까. 걱정과 달리 글이 잘 읽혔다. 표현법이 성숙하지도 않았고, 비문이 적지도 않았고, 구성이 참신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본인의 경험과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줄 알았다. 그리고 오랜 시간 본인의 언어를 곱씹는 인내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문장의 뜻이 모호하거나, 표현법이 과하거나, 구성이 엉성해도 읽던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시선을 옮기는 것에 무리가 없었다. (중략)

 

-라이팅리더 소설가 정성우

모두의 글에는 향기가 난다

저마다 어떤 때가 있다고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마다 어떤 일을 하기 좋은 때가 있을 겁니다. 크기 좋은 때가 있고, 먹기 좋은 때가 있고, 공부하기 좋은 때도 있지요. 이 책에는 글을 쓰는 때가 맞은 열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넓은 세상에서 수많은 시간 가운데 서로 젊은 날의 한때를 모아 이 글을 썼습니다. 각자 살아온 삶의 양도, 내용도 다르지만 성심성의껏 저마다의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글도, 다른 이의 이야기를 하는 글도, 아주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글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삶의 어느 순간을 글을 쓰고 고민하며 함께 보낸 시간이 이 책에 담겨있습니다. 그 뜻이 어쨌거나 중요한 찰나를 잡아내 책을 완성했습니다.

저마다 할애한 시간은 다르겠지만 모두 이 글을 써내고, 책을 만들어내는데 이 여름의 순간에 몰두한 것은 분명합니다. 한 가지의 행동에 집중하고 고뇌한 이 시간이 남은 계절을, 다음에 올 순간들을 맞이하는데 좋은 경험이 되기를 바랍니다.

 

-라이팅리더 소설가 최아현

밤하늘은 다 다른 꿈을 꾸지

올해는 작년보다 덜 더웠다지요. 조금 늦었을 뿐, 숨이 턱턱 막히는 여름은 기어코 찾아오고 말았는데도요. 그 숨 막히는 여름을 뚫고 매주 한자리에 모여 글을 쓴 사람들이 있습니다.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는 동안, 누군가는 노트북을 열어 글을 썼습니다.

여기에 모인 열 개의 글에는 그 시간이 담겨있습니다. 푹푹 삶는 숨막히는 여름의 더위가 있고 열대야에 밤잠을 뒤척인 시간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올해의 여름이 작년보다 고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올해의 여름이 견딜만한 것이었을 겁니다. 열 개의 글이 이렇게 한 순간에 모여 저마다의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2019년의 여름을 지나온 것은 분명하지요. 이 글은 열 명의 사람들이 남긴 열 가지의 자국입니다. 열 사람이 제각기 만들어낸 자국이 한곳에 모여 책이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길고 복잡한 시간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을 만나게 한 시간이었을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2019년 여름의 한복판에서 만난 글쓰기라는 경험이 앞으로의 삶에도 꾸준히 만나고 싶은 무언가가 되기를 바랍니다.

 

-라이팅리더 소설가 최아현

다 지나가니까

기록은 과거다. 무언가에 묻은 활자는 과거의 전유물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고, 미래로 뛰어넘을 수 없는 인간은 그 맞닿을 수 없는 과거를 병적으로 읽는다. 읽는 사람 중 일부는 기록한다. 이의 반복으로 현재엔 무수한 과거가 쌓였다. 과거를 끊임없이 생산하는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책에 실린 열 편의 기록은 과거를 극복하고자 하는 욕구가 깃들어 있다. 책 제목처럼 결국 다 지나가기 때문에 꼭 써서 곱씹을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활자로 붙잡아 묶어 두었다. 결국 다 지나가니까. 여운이 남는다.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지나가지 않았으면 싶은 아쉬움, 지나갔으면 싶은 간절함, 지나갔으니까 관망하는 무미건조함. 이 모든 걸 극복해서 더 나은 현재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닐까.

 

-라이팅리더 소설가 정성우

있을 수도 있는 이야기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내 발바닥만 한 강아지 한 마리가 총총 뛰어와 발목에 코를 비볐다. 곱슬곱슬한 커피색 털로 뒤덮인 조그만 눈사람 같았다. 어린 생명이 아플까봐 만지지도 못하고 쭈그려앉아 하는 냥을 가만히 지켜봤다. 강아지는 신발과 바지 아랫단 사이에 내비친 복숭아 뼈를 무던히도 핥았다. 종종 눈을 마주쳤는데, 무언가를 몹시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손가락 세 개를 말면 얼추 강아지의 안면에 맞게 떨어질 것이다. 그 작은 얼굴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까맣고 촉촉한 눈동자에 깊고 그윽한 호기심이 깃들어있었다. 이후 나타난 목사님에게 강아지의 나이를 물었다.

2개월입니다.

문득 나는 언제부터 저런 눈을 하고 사람을 대했을 것이며, 지금은 어떤 눈을 하고 사람을 대하는 지 궁금했다. 그런 종류의 눈빛을 발하는 내 모습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목사님이 강아지를 데리고 나가자, 이내 모임원들이 들어왔다. 신기하게도 그들의 눈동자에 강아지의 눈동자가 겹쳐보였다.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 기꺼이 타인을 받아들이는 따스한 눈이었다. 이들은 출판 준비 기간 내내 무엇을 쓸지, 어떻게 하면 잘 쓸지 자신에게 물었다. 독자와 가까워지려는 따스한 마음이 없다면,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라이팅리더 소설가 정성우

카페 안에서의 대화

일생의 어느 순간을 가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진이나 영상으로도 가능한 일이지만 조금 더 자세하고, 때로는 구구절절한 방법이 있습니다. 글쓰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 책에는 잠시나마 자신의 삶을 묶어둔 10명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개인이 경험한 사건 혹은 감정을 솔직한 언어로 담아낸 글, 그로부터 생겨난 상상력을 담아낸 글, 한 가지 특성을 집요하게 고민한 글 등. 다양한 사람들이 다채로운 시선으로 풀어낸 글을 한 곳에 묶었습니다.

지난 6주는 아마 모두에게 바쁜 하루였을 겁니다. 6주는 글을 쓰기에 충분히 긴 시간이기도, 짧은 시간이기도 합니다. 바쁘고, 복잡했을 하루 안에 모두에게 글쓰기가 있었다는 사실이 저를 기쁘게 하기도 하고요. 중간에 멈추지 않고 마무리까지 와준 10분에게 감사의 인사도 전합니다. 이 책을 만드는 동안 느꼈던 즐거움이 독자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라이팅리더 소설가 최아현

펜으로 이어지는 발자국

프로그램이 막 시작되던 건 제법 날이 선선했던 4월이었습니다. 꽤 길다고 느껴졌던 프로그램이 최종 원고까지 쉼 없이 달리고 나니, 턱없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바쁜 생활에서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모두들 마지막까지 원고를 작성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가장 먼저 전하고 싶습니다.

여기에는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은 10명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시작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말을 적었습니다. 동화와 그림으로, 사진과 수필로, 혹은 소설로 저마다의 생각과 바램들을 담았습니다.

프로그램이 마무리되는 동안 날씨는 더 더워졌습니다. 더위는 사람을 지치게도 하지요. 하지만 새로운 즐거움을 찾은 10명의 작가들에게는 더위를 견딜 수 있는 경험이 생겼다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스스로와 마주할 수 있는 글쓰기가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라이팅리더 소설가 최아현

말자취

외부와 자신의 거리를 좁혀야 현재보다 수월한 미래가 존재하는 세상. 이 세상은 이를 재촉하고, 사이에 장애물을 놓기 위해 안달복달이다. 갈수록 바쁘고 치열해지는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과 내면의 거리는 벌어진다. 너무 멀어서 서로가 보이지 않으면 세상에 완벽하게 스며든 것일까.

궁극적인 근원이 어딘지도 모를 끊임없는 요구를 평생 맹목적으로 수행한다면, 어떤 결과가 우리를 기다릴까. 죽음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고, 자연은 그 시간 안에 인간을 흙 밑으로 끌어내릴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다. 이에 더해 사회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땅에 빨려드는 인간을 붙잡거나, 그대로 쑤셔 박거나. 우리는 구원 받거나, 버림 받는 두 가지 선택지를 향하여 주 100시간 이상 공부하고, 주 50시간 이상 회사에 붙어있는 게 아니다. 각자의 기준에 부합하는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것이다..(중략)

 

-라이팅 리더 소설가 정성우

책꽂이

아무도 없는 방에서조차 글 쓰는 손이 멈칫하는 이유가 뭘까. 손가락이 아플 수도, 눈에 무언가가 들어가서 앞이 안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런 신체적인 결함 때문에 글을 순조롭게 완성하지 못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소재의 고갈, 문장의 어색함, 개연성의 어긋남, 메시지의 모호함 등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충족하지 못한데서 오는 무력감에 허덕이는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이 이러한 이유로 글을 끝까지 써내려가지 못한다.

혼자만이 존재하는 공간에서조차 타인의 시선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이다. 쓴 글을 자신만 읽는다는 전제를 깔고서라도 살면서 경험한 수많은 기호를 무시하지 못하는 것인데, 이는 자신 또한 하나의 독자로 인정하고 양질의 글을 보여주고자 하는 배려라고 생각한다… (중략)

-라이팅리더 소설가 정성우

이대로 흘려보낼 수는 없잖아요

이 책은 “나를 찾고 싶어요.”란 여러 애성이 끓는 메시지로 엮여있다. 저자 모두 이십대 초반이다. 아직 어떤 일이든 도전해 볼만큼 충분히 젊은 나이다.

그리고 여느 때보다 심하게 앞으로의 선택을 강요받을 나이기도 하다. 직업을 오로지 생계만을 놓고 선택하기에는 일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하다. 개인의 적성까지 고려해 직업을 찾아줄 정도로 세심한 사회라면 문제없겠지만, 수많은 젊은이들이 취업준비에 목매는 사회에선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인생의 절반 남짓한 시간을 투자할 관문에서 사회가 무책임하게 손을 떼려면 그 준비단계인 학교에서나마 개인의 자아를 찾아주려고 노력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오히려 이 사회는 입시 경쟁을 부추겨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시간을 훼손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글은 경쟁에 공들일 시간을 쪼개어 내면의 소리에 다가서려는 이들의 용기 있는 한 발짝이고, 독자들의 삶에 영양분이 될 만한 보통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이다.

 

-라이팅리더 소설가 정성우

숨자국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숨자국을 남긴다. 살얼음이 낀 유리창에 조심스레 글자를 새기듯, 숨자국은 스쳐가는 삶 가운데에 이정표를 찍는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정체모를 숨자국은 묵묵히 내려 쌓이는 눈발처럼, 숨자국은 은근하게 삶에 녹아내린다.

숨자국은 누구의 숨인지도 모르는 것을 마구 삼키며 허덕이며 달려가는 우리를 잠시 멈춰세운다. 그리고 살며시 생을 속삭인다.

팍팍한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키느라, 내 숨자국마저 모르고 살아가던 우리들은 잠시 멈추기로 했다. 각자의 호흡과 숨소리를 바라보며 책을 쓰면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잠시나마 같은 정서를 공유하며, 안을 향해 바라보았다. 소설부터 시, 에세이까지 다른 모양을 가진 글로 이루어져 있지만, 모두 개인마다의 삶을 반추하면서 느낀 것들이 새겨진 글이다.

지금처럼, 물 흐르듯이

“바쁘다 바빠”

20대의 청춘은 바삐 뛴다.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니다 저녁 느지막이 베게에 머리를 붙일 때쯤이면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몸은 쉬었을지라도 마음을 쉬어 본 적은 없다. 그렇게 해서 달려나가는 방향이 지름길은 아니더라도 목적지로 향하는 길이면 좋으련만, 오늘은 어제 달린 방향을 후회하고 내일은 오늘 달린 방향을 아쉬워한다. 여러 번 원점으로 회귀하며 방황하다 보면 불안함과 무기력감이 걸음을 멈추고 주저앉아 고이게 만든다. 일명 ‘현타’다.

그렇게 원점에 주저앉아 나아가지 못한 스스로를 원망할 때 간과되는 사실이 있는데, 원점 주변에 남겨진 발자국들이 원점을 확장하였다는 것이다. 당신이 앉아 있는 곳은 원’점’이 아닌 원 ‘선’, 원’면’이다. 매일 같은 방향으로 걷지 않는다고 하여 진이 빠질 필요는 없다. 우리가 영원히 걸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낭만적인 비약이겠지만, 적어도 확장된 원면의 세계는 더욱 든든한 베이스캠프가 되어 고지를 향한 다음 등정을 수월하게 할 것이다.

그러니 오늘은 오늘 걷고 싶은 방향으로 한 발자국, 내일은 내일 걷고 깊은 방향으로 한 발자국 내딛자. 더딜지라도 고이지 않고 흐르는 물은 모두 바다로 이른다.

호수의 밑바닥엔

미국 몬타나 주의 ‘플랫헤드’ 호수는 세계에서 가장 맑은 호수로 꼽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호수는 그 맑은 물 덕에 익사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훤히 보이는 밑바닥이 발을 뻗으면 그곳에 닿을 것 같은 착각을 만드는 탓에, 실제로는 수심 50M인 곳에 몸을 던지기 때문이다.

“걔는 내가 잘 안다니까?”

어떤 사람을 ‘잘’안다고 자부하는 것이야말로 그 사람을 잘 알지 못한다는 반증이 아닐까. 달은 우리 인생의 반을 가시적으로 함께하지만, 우리는 그의 뒷면에 대해 알 길이 없다. 혹시 아는가. 정월 대보름날의 달에서도 보이지 않는, 절구를 찧는 토끼가 달 뒷면의 이야기일지. 사람은 N면체의 도형 같다. 우리가 그 사람의 일면 아니 다면을 안다고 해도 전체 형상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누군가의 호수를 유영함에는 끝이 없다. 드디어 호수의 밑바닥에 발을 디뎠다고 생각할 즈음, 다시금 깊어져 버린다.

뜻 밖의 문장들

“우리가 만난 건 우연이 아니야”

로맨틱한 분위기를 깨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우연이 맞다.

많은 다른 선택지들이 있었음에도 서로가 서로에게 끌려 선택했다는 점에서 ‘주체적 사랑’ 정도로는 칭할 수 있겠지만, 애초에 서로라는 선택지를 가지는 것 자체가 이미 우연적 속성을 지닌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의 선택은 우연이 아니야’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는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아무렴 어떤가. ‘우리의 선택은 우연이 아니야’도 충분히 로맨틱하다.(중략)

인생이라는 원고에서 개요를 짠다고 해도 그대로 써지지는 않는 법이다. 우연의 연속들을 하루하루 살면서 채워나갈 때, 적혀진 문장들은 뜻밖일 수밖에 없다.

감정 팔레트

사람이 처음 태어났을 때 그 도화지가 하얀색인지 검정색인지는 몰라도, 살아가며 저마다의 색을 띠게 되는 것은 뚜렷해 보인다.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겪어온 사건들과 그 사건에 대한 해석들은 매일매일 그의 도화지에 흡수된다. (중략)

글은 표현의 방식이 더욱 구체적인 탓에, 저작자의 색채가 그림보다도 훨씬 잘 드러난다. 작가가 스스로에 대해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때에는 물론이거니와, 본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거나 심지어 허구의 사건을 구성하여 쓰더라도 예외는 아니다. (중략)

텍스트 사이를 유영하는 독자는 작품에서 흘러나온 색을 느끼며 그의 탐험을 텍스트 너머로의 세계까지 확장시킨다. 그리고 그 색채는 독자와의 교감을 통해 자연히 그의 도화지에 스며든다.

무화과(無花果)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하지만 요즘은 ‘이왕이면’이 아니라 일단 ‘다홍치마’여야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을 좇다 보니 내면적 요소들을 간과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투박한 무화과의 생김새 때문에 무화과를 먹어본 적이 없다면 이에 해당하리라.
꽃이 피지 않는다고 알려진 무화과는 사실 꽃이 안 피는 것이 아니라 무화과 그 자체가 꽃이다. 우리는 열매가 아니라 꽃을 먹는 셈이다. 스스로가 꽃임을 증명하듯, 반이 갈린 무화과는 실제로 그 씨앗으로 꽃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흔히 그러하듯이, 꽃이라는 단어가 ‘아름다움’이라는 의미를 품을 때 꽃을 안으로 피우는 무화과야말로 내면적인 아름다움을 가장 잘 드러내는 개체가 아닐까.

조각들은 맞추어지지 않아도 좋다

(중략..)
인간이 이토록 좋아하는 예측 가능성에 대한 역설은, 만족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예측하지 못한 요소의 등장이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꼭 만족 = 결과치/기대치(예측치)라고 설명을 하지 않아도, 편의점에서 아무 생각 없이 음료수를 하나 계산하는데 1+1행사 중이라며 하나를 더 받았던 기분을 떠올려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중략..)
맞추어 지지 않은 조각들은 미완성이 아닌 그 자체의 고유한 형상일 수 있다.

9시의 우편함

‘ㅋㅋㅋㅋㅋㅋㅋ 아 개웃겨’… 웃음기 빠진 자음 덩이리들에는 신물이 났다.
전송 버튼을 누르는 것과 동시에 전달이 되는, 광속과 비교됨직한 인스턴트 메시지의 속도와는 달리 손편지는 느리고 더디다.손편지는 세련되지 않다.
하지만 그런 서투름 속에 진심이 더 잘 드러나는 때가 있다. 펜 끝이 오래 머문자리는 글자가 굵어지기 마련이다. 편지지에 지저분하게, 동그랗게 번져있는 잉크를 보며 우리는 단어선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글쓴이의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다. 흘겨 써진 획은 글을 쓰던 당시의 급한 마음을 머릿속으로 그리게 만든다.
아날로그, 0과 1의 숫자로서 정제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 날 것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대의 우주

모든 사람은 독자적인 세계를 형성하며 살아간다.
‘나’와 그대가 그린 세계의 차이점은 개인적 경험과 사고의 특성을 구분하는 도구가 되지만, ‘우리’가 공감하는 세계의 공통분모는 보편적인 감정을 공유하고 동질감을 느끼도록 하는 도구가 된다. 이 책에 실린 아홉 권의 단편은 아홉 명의 작가가 여러 화자를 통해 들려주는 개인의 기록인 동시에 관계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우리가사랑한 보통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
(중략..)
바다에 도착하고 나서야 우리는 바다가 일탈의 상징적 의미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중략..) 진정으로 행복은 일탈적 상황이 아닌 일상에 있을 수 있다. 카페에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올 때, 아침에 끓은 김치찌개의 간이 딱 맞을 때, 길에서 우연히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을 때, 집에 오는 길 심호흡해 들이마신 밤공기가 상쾌할 때 우리 입가에는 자연스러운 미소가 지어진다.
일주일 후면 그 날이 월요일인지 수요일인지도 헷갈릴 그런 평범한 하루, 우리는 그런 보통날을 사랑한다.

같이[가치] 쓰다

손에 쥐고 있는 것에 대해 행복할 수 있는 것, 그만한 축복이 또 있을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시간이 지나가고 나서야 그것을 곱씹으며 그에 대한 의미를 부여한다. (중략..)
‘고등학교 떄가 좋았지…’ 라고 말하는 젊은이가 그의 노년에 ‘젊을 때가 좋았지…’라고 또 다시 말하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글은 지나간 날의 발현이다. (중략..)
작가는 앞만 바라보았던 동공을 스스로의 머리 위에, 심장위에 올려놓는다. 이전에는 미처알지 못했던 의미에 닿게 되고, 그를 글와 함께 굳힌다. 글은 그것을 읽는 독자 뿐아니라 작가에게도 미치게 되는데 그것이 글이 그 자체의 결과적 가치를 넘어, 과정적 가치또한 지니는 이유이다.

누군가의 글 누구나의 이야기

(중략..)

글에는 작가만의 고유한 향기가 깃든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글을 읽으며 맡아본 적 없는 향기를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때로는 기꺼이 그것에 취한다는 것이다.

문학의 매력 중 하나는 독자로 하여금 글 자체가 지닌 특수성 기저에 자리하는 보편성에 공감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가령 첫 사랑에 대한 글을 읽을 때, 그것에 대한 기억은 다르지만 그때의 설렘, 기쁨, 좌절, 헌신, 실망과 같은 정서들은 내면에 존재하고 있기에 그를 바탕으로 페이지를 넘겨갈 수 있다.

결국, 책을 덮을 때쯤이면 누군가의 이야기는 누구나의 이야기가 된다.

바람의 둘레

#바람의 제곱

뇌리를 스친 생각이 머릿속에 머무르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옆에서 누군가 말이라도 걸어버린다면, 그 생각은 영원히 다시 내게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순간을 놓치지 않고 한 줄이라도 기록하는 것, 그것이 글의 시작이다.
또한 글은 소망을 담는다. 글을 쓸 때 작가는 의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몇 가지의 소망을 가진다. 글을 통해 남에게 기쁨을 주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기도하고 자신의 생각이 남을 설득시키기를 바라기도 한다. 또한 자기치유적 목적을 가지고 글을 쓰기도 한다. 글은 때로 스스로에게 하는 관심의 표현이기도 하다.

스물; 숨을 쉬다

스물, 이제 막 피어난 꽃잎의 설렘은 얼마 가지 않아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변해간다. 학점, 자소서, 스펙, 학자금 대출, 아르바이트.. 캘린더를 빽빽하게 채운 할일 목록에 눌려 우리는 숨 쉴 틈도 없이 살아간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고찰하고, 순수한 궁금증에서 무언가를 고민하고,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한다. 우리의 생각이 물리적생존 이상의 것에 닿을 때, 우리는 숨을 쉰다. 그리고 여기에 우리의 호흡의 역사를 담았다.